작가 이성경의 작품과 작업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다 문득 ‘소묘(素描)’, ‘회화(繪畫)’, ‘drawing’, 그리고 ‘painting’ 등의 동, 서양의 용어의 의미와 차이점 등이 궁금해져 그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터넷의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들 속에서 내린 결론은 이들이 서로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소묘는 흑백 혹은 단색조인 편이고 이를 포함한 모든 평면화가 회화일까 하는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다 결국 이들 모두는 선을 중시하는 동양에서든, 원근법이 먼저 출현했던 서양에서든, 하얀 (혹은 하얗지 않더라도) 2차원의 평면의 바탕 위에 아주 작은 점이라도 찍는 행위에서 출발하여 어떤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회화에서 ‘형태(形態: 사물의 생김새나 모양)’를 결정하는 것은 ‘선(線: 그어 놓은 금이나 줄)’이기도 하고 ‘색채(色彩: 1. 빛깔, 2. 사물의 표현, 태도 등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성질이나 경향 또는 맛)’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용어를 규정하기 이전에 소묘나 회화는 문자나 언어보다 훨씬 앞선, 인간의 표현 수단 중 가장 오래된 형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소통과 기원의 수단이었던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와 상형 문자들의 형식이 현대의 추상 회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인간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 개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분신과도 같은 표현 수단일 것이다. 이성경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작업에 대한 자세는 예술가 개개인마다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녀의 작품을 보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마도 ‘감정의 표현’일 것이다. 그녀가 최근에 참여했던 그룹전에 관한 보도 기사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성경의 작업은 한지에 목탄을 소재로 겹쳐 그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가장 날카로운 아픔과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감동적이었던 순간들이 뒤죽박죽이 된 복잡한 감정들을 깊이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만난 많은 화가들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들은 모두 이미 끝난 작업을 바라보는 일이 무척이나 생경한 일이라고 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부터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바깥 사물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검푸른 나무숲, 언뜻 언뜻 보이는 하얀 빛,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듯한 중간 톤, 혹은 아주 적은 양의 원색. 미국의 화가, 싸이 톰블리(Cy Twombly)가 그러했듯 반복적인, 무의식적인 유희로서의 선 긋기 행위로 이루어진 듯한, 그리하여 전체적인 화면 구성이 전혀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녀의 작품은 ‘목탄’이라는 매체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신들린 듯한 그녀의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꽃을 그리겠다고 결심하며 각종 꽃의 모양들을 연구하느라 식물 도감을 탐독하고, 절대 도심에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낯선 나무 한 그루를 보며 느낀 경이로움을 표현하느라 여러 번 셔터를 눌렀을 작가는 그림을 완성하는 동안, 아니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가 말하는 ‘그림자가 되었을 때’는 꽃이든, 나무든 애초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바로 그 시점. 가장 날카로운 아픔과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의 감동이, 그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 그림에 투영되고 비로소 정화되는 그 순간, 그리하여 그림자가 나무를 잠식해버리는 바로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목탄’이라는 재료, ‘흑과 백’ 등의 용어는 한국화를 전공한 그녀에게 다른 것들보다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비움’과 ‘채움’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동양적 사유의 방식이 드러나는 그녀의 작업은 화면을 까맣게 채우며 만들어내는 거울의 역설을 통해 ‘비움’, 더 나아가 ‘채움’으로서의 여백의 미를 보여준다. 가느다란 선들이 중첩된 검은 화면 속에서 갖가지의 색을 가진 현실의 모든 형상이 한데 섞여 만들어지는 검은 세상을 상상하며, 그렇게 경계가 지워져버리는 검은 그림자 위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순간이 바로 그림과 하나 되는 순간,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바깥 사물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것만 같은 아련한 흑백 영화, ‘Down by law’에서 Tom Waits와 Roberto Benigni가 이야기하던 ‘A sad and beautiful world’가 펼쳐지는 것 같은 그런 순간 말이다.
-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리알티 대표 (Artist-run space, Realti), 작가 김윤경